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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신석기 시대(The Neolithic Age)의 건축

기록하는 건축가 2026. 7. 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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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신석기 이전의 시대의 주거01. 신석기 시대 이전 (구석기~중석기 시대)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신석기 시대까지 아우르는 서양건축사 서두의 기원전(BC) 연대는 대략 BC 30,000년경부터 BC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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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The Neolithic Age)의 건축

대략 BC 8000년에서 BC 3000년까지 지속된 신석기 시대(The Neolithic Age)입니다. 구석기 시대의 인간이 자연 동굴이나 일시적인 피신처(Shelter)에 머물며 사냥과 채집을 했다면,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도래한 신석기 시대의 인간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인류학에서 이를 '신석기 혁명'이라 부르는데, 이는 오늘날의 산업혁명에 견줄 만큼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대사건이었습니다. 야생식물 채집에서 식량 생산(농경)으로의 전환은 인간을 동굴의 제약에서 해방시켰고, 비로소 대지 위에 영구적인 건축물을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01. 건축의 기원: 신석기 시대, 대지 위에 지울 수 없는 문명의 흔적을 새기다

 

대략 기원전 8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까지 지속된 신석기 시대(The Neolithic Age)는 인류의 공간 창조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입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온화해지면서 영국의 평원에서부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동굴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신석기 혁명'이라 불리는 이 거대한 변화는 야생식물 채집에서 식량 생산(농경)으로의 전환을 이끌어냈으며, 그 결과 인간의 인문적 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 비로소 대지 위에 영구적인 건축물을 구축하고 소유하는 '정착 문명'의 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현대 고고학은 이러한 고대 유물의 연대를 추정할 때 탄소의 방사성 동위원소인 C14를 이용하는 연대측정 방법을 사용합니다. 유기체가 죽은 후 C14가 질소로 분해되는 반감기 속도를 이용하는 이 방식은, 8,000개의 나이테를 가진 캘리포니아 강솔방울 소나무를 이용한 나이테 연대측정법으로 보완되면서 더욱 정밀해졌습니다. 이 새로운 나이테 방법을 적용한 결과, 일부 선석기 시대 건축물들이 과거에 추정했던 것보다 몇 백 년은 더 오래되었음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층 더 깊은 시간의 내공을 품고 있는 신석기 시대 건축의 위대한 유산들은 크게 예리코의 정주지, 싸탈 후유크의 마을, 그리고 거석 건축이라는 세 가지 줄기로 이어집니다.

 

 

02. 예리코의 정주지(Jericho Settlement, BC 8000~7000년경): 생존과 방어가 빚어낸 최초의 요새

오늘날 요르단, 이란, 아나톨리아(현재의 터키) 등 근동 지역의 신석기 혁명 중심지 중에서도 요르단강 유역을 내려다보는 높은 대지에 자리한 예리코(Jericho)는 인류가 영구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개척한 최초의 정주지 유적입니다.

 

기원전 7500년경 인구가 약 2,000명 정도로 추정되던 이 마을은 농경을 통해 부가 늘어나자, 강력한 이웃 부족들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방어의 필요성에 직면했습니다. 이에 정착민들은 암석을 깎아 넓은 해자(Ditch)를 만들고 그 안쪽으로 두께 1.5m에 달하는 강력한 석조 성벽을 둘러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 무려 5m높이로 보존되어 있는 이 성벽의 백미는 내부의 높이 9m, 직경 9m에 달하는 대형 원형 석조 탑입니다. 완벽한 방어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이토록 엄청난 규모의 구조물을 세웠다는 사실은 당시 정착민들이 보유했던 고도의 조직력과 놀라운 기술적 성취를 증명합니다.

 

이후 기원전 7000년경 원래 주민들이 떠나고 도착한 새로운 정착민들은 돌 기초 위에 직사각형 진흙 벽돌로 집을 지었습니다. 이 건물의 평면은 훗날 후기 그리스 건축의 핵심이 되는 '메가론(Megaron)' 평면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방 바닥과 벽면에 매끄러운 회반죽을 바르고 채색을 하여 실내를 가꾸었으며,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도 매우 깊었습니다. 특히 세상을 떠난 조상의 두개골을 수습해 그 위에 석회로 얼굴을 정교하게 본뜬 뒤, 눈에는 조개껍데기를 박아 넣고 머리카락에 채색을 해 마치 살아있는 듯한 석회화된 두개골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매장 전 집 안 곳곳에 둔 것으로 보아 두개골을 '영혼이 담긴 곳'이자 가호의 매개체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예리코 유적지 단계에서는 아직 도기류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03. 싸탈 후유크( 차탈회위크, Çatalhöyük) )의 정주지 (BC 6500~5700년경): 길과 문이 없는 안전한 벌집형 마을

현재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에 위치한 싸탈 후유크(Catal Hüyük)는 1961년에서 1963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발굴된 유적으로, 무려 32에이커(약 39,178평, 129,500m2)에 달하는 거대한 신석기 정주지입니다. 이 복합 주거 단지는 건축적으로 매우 독특하고 기발한 배치 개념을 선보입니다.

 

이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단지 내부에 도로(길)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택들의 평면이 정방형이나 장방형의 규칙적인 형태로 서로 빽빽하게 붙어 있어서, 주민들은 오직 지붕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매우 불편해 보이는 이러한 구조는 외곽에 자리한 집들의 바깥 벽에 창과 문이 없는 거대한 벽을 형성함으로써, 연속적인 띠 모양의 완벽한 외부 방어벽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모든 건물이 서로를 완벽하게 맞받아 지탱하고 있어 독립된 구조물보다 훨씬 튼튼한 구조적 안정성을 자랑했습니다.

 

주택들은 단단한 목조 뼈대로 구조를 보강한 뒤 햇볕에 말린 진흙 벽돌로 지어졌습니다. 내부 벽과 바닥은 깨끗한 회반죽을 바르고 채색을 했으며, 벽을 따라 바닥을 한 단계 높인 평상(플랫폼) 공간은 잠을 자거나 일하는 곳으로 유연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마을 곳곳에서는 주택과 뒤섞인 수많은 신전이 발견되었는데, 신전 내부는 벽화, 회벽 부조, 동물 머리, 그리고 소두개골 장식인 부크라니아(bucrania)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풍만한 몸집의 제사용 모계 여신상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연상시키면서도 훨씬 더 사실적인 묘사를 보여줍니다. 특히 어느 오래된 신전 벽면에서는 마을의 질서 정연한 배치와 저 멀리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진 화산의 폭발 장면을 함께 그려 넣은 인류 최초의 풍경화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 독특한 정주지는 기원전 5700년경 주민들이 완전히 농경 경작지로 전환하여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03. 거석 건축 (Megalith): 돌에 새겨 넣은 인류 최초의 거대한 영성

 

신석기 시대 후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섬이나 해안가 유적지 전역에는 자연 상태의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거석(Megalith) 기념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청동기나 철기가 없던 시절, 인간이 거대한 석재를 다루기 시작한 이 위대한 건축 유형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분류됩니다.

 

선돌(Menhir): 거대한 돌들을 단독으로 수직으로 세우거나 열을 지어 배열한 것입니다. 장례나 태양 숭배 등 종교적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프랑스 브리타니(Brittany) 지방의 카르나크(Carnac)에 수천 개의 돌이 늘어선 장관이 대표적입니다.

 

환상열석(Cromlech)과 몰타의 신전들: 거대한 돌들을 원형으로 배열하고 그 일부를 수평의 석판으로 덮은 양식입니다. 특히 지중해의 섬 몰타(Malta)의 고대 문화에서는 경질의 석회석을 사용해 세 개의 돌을 조화시킨 트리리톤(trilithon) 양식의 출입구를 만들고, 하나의 돌 위에 다른 돌을 안쪽으로 조금씩 내밀어 쌓는 '내쌓기(corbel) 방식'을 선보였는데, 이는 목조 지방을 지지하기 위한 최초의 구조적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04. 거석 건축의 정점: 스톤헨지 (Stonehenge, BC 2000년경)

스톤헨지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영국 솔즈베리 평원에 위치한 석기 거석 건축 미학이 도달한 최고의 결정체입니다. 과거 중세 시대에는 마법사 멀린이나 거인족의 초자연적인 작품으로 여겨졌으나, 현대 고고학의 세밀한 조사 결과 이 거대한 석조 구조물 안에는 대단히 정교하고 지적인 '시각적·건축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거대한 사르센(sarsen) 석과 청색 돌들이 이루는 동심원 구조 속에서 발견되는 착시 교정 기법입니다. 바깥쪽 원형의 띠를 형성하며 기둥 위에 가로로 얹힌 인방석(Lintel)들은 미세하게 곡선으로 가공되어 있어, 전체가 연결되었을 때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둥근 원형을 이루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직으로 서 있는 기둥 돌들은 위쪽으로 갈수록 지름이 미세하게 가늘어지는 섬세한 처리가 되어 있으며, 기둥의 중간 부분이 미세하게 배가 부른 '배흘림(Entasis, 엔타시스)' 기법이 선행적으로 적용되어 있었습니다. 후대 고대 그리스인들이 파르테논 신전 등에서 완성한 최고의 시각 교정 기술이 이미 기원전 2000년경 신석기인들의 손에 의해 원시적인 형태로 구현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스톤헨지의 중심축과 접근로는 하지(Summer Solstice)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빛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배열되어 있어, 당대 정착민들이 후기 그리스인들을 능가하는 정밀한 천문학적 지식을 공간으로 치환했음을 보여줍니다. 실존주의적 공간 관점에서 볼 때, 스톤헨지는 광활한 대지 위에 '중심(Center)'과 '통로(Pathway)'라는 건축의 가장 본질적인 개념을 결합하여 완성한 사건이었으며 외부 공간을 완벽하게 환경화한 진정한 '건축'의 시초로서 오늘날까지 수많은 건축가들을 매혹시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