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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꼬르뷔제/07] 스승 피터 베렌스와의 만남 (1910)

기록하는 건축가 2025. 11. 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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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을 위한 표준(Standard)을 확립하고, 대량 생산(Mass-production)에 착수해야 한다."

- 르 꼬르뷔제, 건축을 향하여 - 



피터 베렌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왜 피터 베렌스 (Peter Behrens)를 찾아갔을까?

 

1908년 파리에서 오귀스트 페레에게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배우고, 빌라 자크멧을 설계한 후, 유럽 근대 건축의 새로운 흐름인 산업적 합리성을 배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베를린으로 찾아갔다.

 

당시의 꼬르뷔제는 '오귀스트 페레'에게서 구조적 해방을 배웠지만, 그 구조를 대량 생산과 산업 디자인의 논리로 어떻게 적용할지 배워야 했다. 당시 독일의 AEG(종합전기회사)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서 이 분야의 선구자였다.

 

1910년 초 베를린으로 건너갔고,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 일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이미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여러 건축물을 스케치하고 연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경험과 열의를 바탕으로 사무실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1910년 약 5개월의 기간동안 근무하였고, 이 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라쇼드퐁에 있는 학교 스승에게 보낼 장식 디자인 스케치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즉, 그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근대 건축의 세 가지 필수 요소인 '미학(이탈리아), 구조(페레), 산업적 태도(베렌스)'를 완성하기 위해 가장 진보된 지식의 원천을 찾아 나선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당시의 피터 베렌스 (Peter Behrens, 1868~1940) 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1910년에 만났던 그는  단순한 건축가가 아니라, 독일 산업과 근대 건축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선구자였다. 그는 건축과 디자인을 대량 생산의 합리성과 통합하려 했던 혁명가였다.

 

#AEG와 산업 디자인의 선구자

AEG 선풍기 모델 GB1 (이미지출처 : 조선일보), 물주전자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당시 그의 가장 유명한 직책인 AEG(Allgemeine Elektrizitäts-Gesellschaft, 종합전기회사)의 예술 고문으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기업 정체성(Corporate Identity)의 창시자로서 세계 최초로 기업의 로고 디자인, 제품 디자인(주전자 등), 광고, 그리고 공장 건축까지 모든 것을 단일하고 통일된 미학으로 디자인했다. 이는 건축가의 영역을 넘어 산업 디자인의 영역을 개척한 획기적인 활동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AEG 터빈 공장(AEG Turbinenhalle, 1909)은 철과 유리라는 산업 재료를 사용하여 기능적이면서도 기념비적인 건축을 구현했습니다. 당신은 이 작품을 통해 산업 건축의 명료함과 웅장함을 직접 경험했다.

 

#독일 공작연맹의 건축 철학

'독일 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의 핵심 멤버였습니다. 이 단체의 목표는 예술과 산업의 통합을 통해 독일 제품의 품질과 미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다.

 

합리성과 표준화: 그는 개별 예술가의 감성보다 '기능적 합리성과 표준화(Standardization)'가 근대 디자인의 윤리임을 역설했습니다. 이 태도는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유형학적 사고: 그는 건축을 '반복될 수 있는 유형(Type)'으로 보고, 건축가에게 객관적인 논리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배운 고전적 질서를 대규모 산업사회에 적용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근대 건축의 할아버지, 근대 건축가들의 스승

그의 사무소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건축가들의 집결지였다. 1910년 그곳에 있었을 때, 훗날 바우하우스를 창립할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그리고 근대 건축의 또 다른 거장이 될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역시 그의 사무소에 있었다.

 

이처럼 근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세 명의 거장에게 산업과 건축을 통합하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동시에 가르친 '근대 건축의 할아버지(Grossvater)'와 같은 존재였다. 대규모 문제에 대처하는 근대 건축가의 태도를 완성했다.


#건축작품

당시 독일 산업 건축의 황금기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근대 건축의 기념비로 남아있으며, 그 사무실은 진정한 근대 건축의 요람이었습니다.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산업 디자인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의 주요 작품 중 상당수는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어 사용되고 있다.

 

#작품_AEG 터빈 공장 (AEG Turbinenhalle, 1909)

AEG 터빈 공장 (AEG Turbinenhalle, 1909)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researchgate)

 

베를린에 위치해 있으며, 노출된 철재와 유리로 지어진 산업 건축의 걸작이자 기념비적인 작품. 현재까지도 남아있으며 독일 근대 건축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전에 공장은 단순히 기능만 충족하는 획일적인 건물이었다. 터빈 공장을 통해 산업적 기능과 예술적 형태가 결합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독일 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의 철학, 즉 예술과 산업의 통합과 표준화의 중요성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대표작이다. 기능적 필요에 의해 장식이 완전히 배제되고, 구조와 재료가 그대로 드러나는 이 공장은 이후 바우하우스와 국제주의 양식으로 이어지는 근대 건축의 원형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근대건축 거장들의 교류의 장

 

당시 사무실에는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의 장소였다. 르 꼬르뷔제가 1910년 사무실에서 일했을 때, 훗날 근대 건축의 거장이 될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발터 그로피우스 와 그의 작품인 바우하우스 (이미치 출처 : 위키백과)

 

1907년부터 사무실에서 일했으며, 도착할 무렵인 1910년에는 자신의 사무실을 개설하기 위해 막 떠나거나 떠날 예정이었다. 비록 함께 일한 기간은 짧았지만, 그의 작업을 알고 있었고, 그로피우스와 나눈 지적인 교류는 베렌스의 합리주의적 정신을 공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근대 건축의 교육 혁명가로 불려지며 근대 건축과 디자인 교육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일 건축가이자 교육자입니다. 그의 핵심 목표는 '예술과 산업의 통합'을 통해 대량 생산 시대에 적합한 합리적인 디자인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그의 건축사적 최대 업적은 '1919년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Bauhaus)'를 창립한 것입니다. "모든 예술 활동의 최종 목표는 건축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건축, 공예, 예술을 통합 교육하여 '기능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양성했다. '데사우 캠퍼스(1926)'는 그의 교육 철학과 '국제주의 양식'의 원칙을 명확히 보여주는 걸작이다. 1937년 나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며 바우하우스의 사상을 전파했다. 기술과 예술의 통합을 통해 근대 건축의 '합리주의와 기능주의'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교육 혁명가로 평가받고 있다.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

미스 반 데어 로에와 그의 대표작 시그램 빌딩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그는 1908년부터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고, 꼬르뷔제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함께 근무했습니다. 비록 당시의 기록은 개인적인 우정을 강조하기보다는 공통의 사상을 공유하는 환경을 강조하지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근대적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최소주의의 거장으로 불리는 독일 출신의 건축가로,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라는 철학을 근대 건축에 정립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극도의 절제'와 '구조적 명료함'을 통해 건축을 '보편적인 공간 예술'로 승화시켰다. 장식을 배제하고 '철골'과 '유리'를 사용하여 재료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은 '자유로운 평면'과 '흐르는 공간' 개념을 구현한 그의 대표작으로, 근대 건축 미학의 정점으로 꼽힌다. 미스는 1930년부터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을 역임했으나, 나치 압박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1938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시카고 'IIT(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활동하며 '철골 구조'의 노출과 '투명성'을 강조한 건축을 선보였다. '판스워스 주택'과 '시그램 빌딩'은 그의 철학을 완벽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건축은 단순한 미니멀리즘을 넘어, '구조적 진실성'과 '명료한 형태'를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어떤 교류를 했을까?

베렌스 사무실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근대 건축의 세 기둥(그로피우스, 미스, 르 꼬르뷔제)이 산업적 논리, 기능주의, 그리고 명확한 형태라는 공통의 언어를 배우고 토론했다. 건축을 예술가의 감성이 아닌, 산업과 사회를 위한 합리적인 도구로 바라보는 태도를 배웠으며, 이는 훗날 각자의 방식으로 근대 건축을 정의하는 기초가 되었다.

 


#배움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건축을 산업과 대량 생산의 논리로 바라보는 태도'이자, '표회준화(Standardization)'의 중요성이었다. 베렌스 사무실에서의 경험(1910년)을 통해, 오귀스트 페레에게서 배운 '구조적 기술'과 빈에서 배운 '미학적 절제'를 '현대 사회의 대규모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배움 1. 산업적 합리성과 표준화의 정신

베렌스는 독일 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의 핵심 사상을 건축으로 실현한 선구자였다. 그에게서 다음과 같은 핵심 원칙을 배웠다. 건축물을 '예술적 감성'이 아닌, '엔지니어링의 효율성'과 '경제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산업적 합리성 (Industrial Rationality)을 배웠다. AEG 공장처럼 기능에 충실하고 구조적으로 명료한 건축이 곧 아름다움임을 증명했다.

 

기업의 모든 제품을 '통일된 미학적 표준' 아래 디자인했다. 이 표준의 정신이 주택 문제 해결에 필수적임을 깨닫았을 것을 보인다. 건축이 소수를 위한 개별 예술품이 아니라, '표준화된 '유형(Type)''으로 대량 생산되어야만 근대 사회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배움 2. 근대 건축가의 윤리적 태도 확립

건축 철학에 '실용적이고 윤리적인 기반'을 제공했다. '윤리적 확장' 빈에서 배운 '장식 배제'를 단순히 미학적 이유를 넘어, '산업 시대의 효율성과 자원 절약'이라는 '경제적/합리적 필연성'으로 확장했다.

 

대규모 공장 건축 경험을 통해, '개별 건축'을 넘어 '도시 전체를 합리적으로 구획하고 표준화'하는 거대한 시스템(도시 계획)을 구상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얻었다. 훗날의 도시계획의 발판이 된 셈이다.

 

#배움 3. 결정적인 영향

배운 산업적 논리는 가장 유명한 건축 개념으로 이어졌다.

 

'살기 위한 기계'

주택이 '기능과 효율성'에 최적화된 도구(기계)여야 한다는 개념의 '산업적 근거'를 제공했다.

 

'돔-이노 시스템 (Dom-Ino System)'

주택을 '표준화되고 반복 가능한 구조 시스템'으로 구상하는 데 필요한 '대량 생산의 논리'를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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