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여행 (Voyage d'Orient) 여행의 '서곡(序曲)'과 같으며, 근대 건축의 '기술적 능력(페레, 베렌스)'을 갖춘 후, 그 능력으로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문제의식을 확고히 하는 시기였다.
#이동 동선 및 주요 거점
스위스 라쇼드퐁 출발하여 프라하(Prague), 빈(Vienna), 부다페스트(Budapest)를 거쳐 횡단하였다. 이 도시들은 대부분 19세기말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재편되거나 팽창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페터 베렌스에게서 배운 산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도시를 비판적으로 관찰했다. 이는 이후 도시계획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경험의 재산이 되었다.
[르 꼬르뷔제/07] 스승 피터 베렌스와의 만남 (1910)
"주택을 위한 표준(Standard)을 확립하고, 대량 생산(Mass-production)에 착수해야 한다."- 르 꼬르뷔제, 건축을 향하여 - #왜 피터 베렌스 (Peter Behrens)를 찾아갔을까? 1908년 파리에서 오귀스트 페레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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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횡단과 근대 도시의 문제 인식

1911년 3월 ~ 5월 초 (약 1개월 반)의 기간에 유럽을 횡단하면서 도시의 문제를 인식하게 된다. 스위스 라쇼드퐁에서 출발하여 프라하 (Prague), 빈 (Vienna), 부다페스트 (Budapest)를 거진 여정을 떠났다.
지난 여행에서 이탈리아와 빈에서 미학적, 윤리적 깨달음을 얻었지만, 동방여행의 출발 시점에서는 유럽 대륙의 중심부 도시들이 산업화와 인구 증가로 인해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 목격했다. 빠르게 팽창하는 도시들과 이들이 겪는 교통 문제, 주거 환경 악화, 비효율적인 도시 구획 등을 관찰했다. 발전에 따른 도시는 무질서가 관찰되었고, 이는 이전 스승들로부터 배운 산업적 합리성을 개별 건축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장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또한, 요제프 호프만과 아돌프 로스에게서 배운 기하학적 명료함과 합리성을 개별 건축물뿐만 아니라 도시 계획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도시들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할 영원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갈망을 더욱 키웠고, 이는 곧 고대 그리스의 비례와 지중해의 질서가 남아있는 동방으로 향하는 강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근대 건축가로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를 눈앞에 던져주었으며, 이후의 미학적 탐구(아테네)를 현실적인 문제 해결로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문제인식

#당시 오스트리아 빈은?
빈은 이미 1907년 방문하여 지적인 영향을 받았던 곳으로, 1911년 재방문은 이전에 얻은 건축적 윤리를 현실과 대비하며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곳은 *링슈트라세를 중심으로 과장된 장식과 역사주의 양식이 지배적이었다. 비록 아돌프 로스나 요제프 호프만 같은 선구자들이 합리적인 건축을 주창하고 있었으나, 도심 건축의 대세는 여전히 낭비적인 장식과 구시대적인 미학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건축 태도가 주택 부족 문제를 비롯한 근대 도시의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보았다.
*링슈트라세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허문 후 만든 도로로서 1858년에 착공하여 7년 후, 길이 약 5.2km의 원형 거리가 시내 중심부를 둘러싸는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빈의 문화 발전은 이 도로를 따라 이루어졌으며, '미술사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등 수많은 볼거리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어 빈 여행의 중심지로 여겨지고 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건축을 윤리적 문제로 인식하는 태도를 확고히 했을 것으로 보인다. 장식 배제를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닌, 사회적, 경제적 당위성으로 고려하는 순간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낭비되는 장식의 비용과 노력을 대중을 위한 합리적인 주택 공급에 투입해야 한다는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며, 장식의 윤리적 절제를 생각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확립한 기능주의적 태도를 바탕으로, 주택을 인간의 삶이라는 기능에 최적화된 도구로 정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명언과 돔-이노 시스템 구상으로 이어지는 기반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문제 인식


#당시 부다페스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금기를 맞아 파리 등 서구 대도시를 모델로 한 대규모 도시 확장을 진행 중이었다. *안드라시 거리 같은 웅장한 가로와 기념비적인 공공 건축물들이 건설되며 도시의 힘과 자본을 과시했다. 과시와 비합리성을 핵심적인 문제로 보았다.
대규모 공공 건축물들이 기능과 구조에 정직하기보다, 화려하고 역사적인 장식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비경제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 이는 산업 시대의 윤리에 부합하지 않는 낭비로 생각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대규모 확장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획이 합리적인 기능 분리나 표준화된 주거 공급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미학적 과시에 치우쳐 있어 도시 기능의 최적화를 저해했다.
*안드라시 거리
1885년 외무장관 안드라시 백작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거리이다. 파리의 샹젤리제를 본떠 만들었다. 거리가 아름다워 200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거리에는 유럽에서 오래된 3대 지하철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으며,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극장도 볼 수 있는 곳이다.
#프라하에서의 문제인식

#당시 프라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당시 프라하는 보헤미아의 수도로서, 중세 도시의 구조가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에서 급격한 산업화와 인구 증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유산과 민족 문화의 생동감이 공존하는 도시였지만, 구시가지의 밀집도에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세의 좁고 불규칙한 구획과 골목길이 근대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다. 햇빛과 공기가 부족하여 위생 문제와 비효율적인 공간 사용을 초래했다. 당시의 체코 아르누보(세세션) 같은 장식적인 스타일이 유행했으며, 이를 합리성과 기능을 해치는 불필요한 장식으로 간주되며, 장식 배제의 윤리가 필요함을 재확인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배움과 인식
핵심적인 배움은 근대 도시의 비합리적인 질서에 대한 깊은 문제 인식과, 이를 해결할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건축 태도의 재확립이었다. 건축적 관심사를 개별 건물에서 도시 전체의 구조와 기능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배움과 인식 1. 도시의 무질서와 비효율성 인식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에서 그는 중세의 좁고 구불구불한 구획 위에 무계획적으로 근대 산업 시설과 인구가 밀집된 상황을 목격했다.
이러한 도시는 비위생적이며, 교통 흐름이 복잡하고 도시 기능이 혼란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굽은 길은 당나귀의 길이다. 곧은길은 사람의 길이다"라는 명언으로 상징되듯, 감성적인 무질서 대신 직선과 기하학에 기반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도시 계획이 근대 사회의 윤리적 의무임을 확신했을 것으로 보인다.
#배움과 인식 2. 윤리적 건축 태도의 재확립
빈에서는 이전에 배우게 된 아돌프 로스와 요제프 호프만의 가르침을 현실과 비교하며 중요성을 강화했다.
당시 주류였던 역사주의적 장식과 과시적인 건축은 비경제적 낭비이며, 대중의 주택 문제 해결이라는 근대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을 방해하는 비윤리적인 행위임을 확고히 했다.
건축은 예술가의 감정 표현이 아닌, 기능과 효율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합리주의적 태도를 재차 다졌다. 이는 훗날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라는 선언의 사회적 기반이 되었다.
#배움과 인식 3. 보편적 진리에 대한 갈망
유럽 대도시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혼란, 비위생, 비효율)을 목격하며, 모든 것을 해결할 시대를 초월하는 근본적인 원칙과 미학적 진리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이 갈망이 바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으로 향하는 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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