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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꼬르뷔제/08-2] 동양적 질서와 토착 건축 탐구 (1911년 5월 중순 ~ 7월)

기록하는 건축가 2025. 11. 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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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유럽을 떠나 발칸반도를 횡단하여 이스탄불에 도달함으로써, 지중해적이고 동양적 질서에서 새로운 건축적 영감을 찾은 시기다. 당시의 관찰과 경험이 도시 조직과 형태 구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11년 5월 중순부터 7월까지 약 두 달간 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요 거점인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이스탄불 (터키),  부르사 (터키)를 방문하였다. 서구의 미학적 혼란에 대비되는 순수하고 인간적인 건축의 원형을 발견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르비아 (당시 베오그라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국경을 마주한 독립국)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서유럽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동양과 지중해로 향하는 문화적, 지정학적 교차로에 놓여 있었다. 이 도시는 무질서의 복합적인 형태를 보여주었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이미지 출처 : 트립닷컴)

#혼돈의 교차로, 베오그라드

문화적 충돌과 급진적 성장 베오그라드는 오스만 제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진적인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다뉴브강과 사바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서유럽)과 오스만 제국(동양)이라는 상이한 두 문명권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오랜 전쟁과 분쟁의 역사로 인해 도시의 건축과 건설이 단절되고 불규칙하게 이루어졌으며, 여러 시대의 양식이 체계 없이 혼재되어 있었다. 독립국가로서 서유럽을 모방한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세우려는 열망이 강한 곳이었다.

 

이전의 유럽도시들(프라하, 부다페스트)의 문제점들이 더욱 심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관찰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곳은 서유럽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동양과 남부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으로, 그의 눈에는 '미학적, 기능적 혼란'이 극대화된 도시로 비쳤다. 베오그라드의 건축물들은 크게 두 가지 상이한 힘의 영향을 받아, 도시의 질서를 해치는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문제점 1. 서구 지향의 과시적 기념비 건축

당시 도심에는 '서유럽 열강의 수도를 모방한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이는 오스만 제국의 영향에서 벗어난 신생 독립국 세르비아가 국가적 위신을 과시하고 유럽 문명권에 편입되고자 하는 열망의 산물이었다. 이 건물들은 주로 '신르네상스'나 '신바로크'와 같은 역사주의 양식을 따랐다. 거대한 규모, 육중한 석재 마감, 그리고 무엇보다 '과도한 장식(Ornament)'으로 치장된 외관이 특징이었습니다. 잔느레의 시각에서 이 건축물들은 본질적인 '기능적 논리'보다는 '시각적 권위와 허영심'을 최우선하는, 지극히 비합리적인 형태였다. 그는 이 장식적 낭비가 아돌프 로스의 윤리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문제점 2. 토착적 삶에 갇힌 저층 주거

기념비적인 건물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은 '오스만 양식의 잔재가 남은 소박하고 불규칙한 저층 주거'였습니다. 이 건물들은 수많은 분쟁과 역사적 단절 속에서 지역 재료와 실용성에 기반해 지어졌다. 개별적으로는 지역의 정직한 삶을 담고 있었지만, 도시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했습니다. 이 토착 건축들은 '무계획적인 배치'와 '불규칙한 구획'으로 인해 햇빛과 공기가 부족했으며, '비위생적인 환경'을 초래했습니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에서 보았던 '도시 질서의 부재'를 이곳 베오그라드에서 더욱 심화된 형태로 목격한 것으로 보인다.

 

#건축적 혼돈에서 얻은 교훈

가장 큰 문제는 이 두 상이한 형태, 즉 '과시적인 역사주의 건축'과 '비위생적인 토착 주거'가 '어떠한 조화나 통일된 원칙 없이 뒤섞여' 도시 전체를 미학적, 기능적 혼란 상태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쪽 모두 비합리적인’ 건축적 충돌을 목격하며, '지역적 유행'이나 '과거의 스타일 모방'이 근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확신했다. 베오그라드는 그에게 '근대 건축의 보편적 법칙'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는 이 혼돈을 잠재우고 모든 건축에 적용될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미학적 진리', 즉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보여줄 '비례와 기하학적 질서'만이 유일한 해답임을 더욱 강하게 믿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문화의 영향권 사이에 놓인 만큼 도시 전체에 미학적, 기능적 통일성이 극도로 부족했다. 서유럽의 장식적인 스타일과 지역의 전통 건축, 그리고 무계획적으로 들어서 있었고, 근대 시설들이 아무런 조화나 질서 없이 뒤섞여 있었다.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들이 기능적 논리보다는 과시와 시대착오적인 스타일에 치중하는 경향이 다소 강하게 보였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페터 베렌스에게서 배운 산업적 합리성과 아돌프 로스에게서 배운 윤리적 절제에 완전히 위배되는 모습이었다. 

 

[르 꼬르뷔제/07] 스승 피터 베렌스와의 만남 (1910)

"주택을 위한 표준(Standard)을 확립하고, 대량 생산(Mass-production)에 착수해야 한다."- 르 꼬르뷔제, 건축을 향하여 - #왜 피터 베렌스 (Peter Behrens)를 찾아갔을까? 1908년 파리에서 오귀스트 페레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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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혼란은 곧 '건축과 도시를 지배할 근본적인 '법칙'이나 '원칙''이 부재함을 시사했다. 이스탄불과 아테네로 향하여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한 미학적 진리를 찾고자 하는 갈망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고 있다. 베오그라드는 "이 혼란을 잠재울 강력한 질서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베오그라드에 이어 방문했던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는 그의 건축 철학에 미학적 비합리성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했다. 이 도시는 서유럽, 특히 파리를 모방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게 반영된 건축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그에게 '스타일'의 공허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의 전경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문제점 1. 서구 스타일의 과시

당시 독립 후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서구화하려는 열망이 강했다. '동방의 작은 파리'를 자처하며, 프랑스 건축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도시에는 부유층과 지식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나 서유럽의 '아르누보(Art Nouveau)'와 같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양식의 건축물들이 대규모로 건설되고 있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장식적 기교와 외형적 화려함을 강조했다이는 루마니아의 부유층과 지식인들이 서유럽의 문명 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반영한 결과였다.

#문제점 2. 비합리적 낭비와 스타일의 모방

화려한 건축물들에서 깊은 윤리적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이 건축물들은 구조적 논리나 기능적 필요보다는, 일시적인 유행과 미적 과시에 치중했습니다. 즉, 건축의 본질인 합리적인 형태 없이 껍데기만 모방한 형식주의였습니다. 빈(Vienna)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장식적 치장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쏟는 것은 경제적, 윤리적 낭비였습니다.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은 이러한 낭비를 제거하고 대중의 합리적인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음을 재확인했다.

 

관찰한 큰 문제는 껍데기뿐인 스타일의 모방이었다. 건축이 기능이나 구조적 논리에 충실하기보다 유행하는 스타일과 과도한 장식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이 장식들은 본질적인 건축적 의미 없이 단순히 부와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빈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장식적 치장은 경제적 낭비일 뿐이며, 산업 시대의 근대적 윤리인 합리성과 절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르 꼬르뷔제/08-1] 동방여행 시작, 유럽 횡단과 근대 도시의 문제 인식 (1911년 3월 ~ 5월 초)

동방여행 (Voyage d'Orient) 여행의 '서곡(序曲)'과 같으며, 근대 건축의 '기술적 능력(페레, 베렌스)'을 갖춘 후, 그 능력으로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문제의식을 확고히 하는 시기였다. #이동 동선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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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보편적 형태의 필요성

'스타일' 중심의 건축을 버리고 '형태(Forme)' 중심의 건축으로 나아가야 함을 확고히 했다. 유행에 따라 변하는 지역적 스타일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건축 원칙(비례, 기하학)'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식과 기교가 건축의 본질을 가린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장식 배제의 윤리와 기능적 정직성이 건축가의 도덕적 의무임을 강화했다. 이러한 관찰은 그가 곧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으로 향하여 영원한 미학적 진리를 찾게 만드는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이후 순수주의(Purism) 철학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진정한 미학은 겉치레나 장식적인 기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형태와 구조의 진실성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절감했을 것으로 보이며, 유행에 따라 변하는 지역적 스타일(Style) 대신,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건축 원칙(Forme)'과 규범을 찾아야 한다는 윤리적, 미학적 갈망을 심화시켰습니다. 이는 곧 아테네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스탄불에서의 배움, 가장 오래 머문 곳

이스탄불 이미지 출처 : 트리플

 

하이라이트인 '이스탄불(Istanbul)'에서 약 5주 동안 머물렀다. 이곳은 서유럽의 혼란을 뛰어넘는 두 가지 상이하면서도 보편적인 건축적 질서를 발견하게 해 준 결정적인 거점이었다.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으며,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지정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두 가지 극명한 건축 질서에 주목했다. 기념비적 건축물로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아야 소피아 등 오스만 제국의 웅장한 종교 건축물에서 순수한 기하학과 대규모 볼륨을 강조를 관찰할 수 있었고. 구시가지의 전통 주택인 '오 달러(Odalar)'와 그들이 형성하는 골목길. 토착 재료를 사용하고 인간적 척도를 유지하며 유기적으로 밀집되어 있는 주거와 도시 조직을 발견했다.

 

#관찰, 웅장한 기념비적인 건축물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 등 오스만 제국의 웅장한 건축물들을 관찰했다. 이 건물들은 복잡한 장식 대신 '단순하고 명료한 기하학적 볼륨(구, 반구, 원통)*'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볼륨의 순수성이 곧 숭고함으로 이어진다는 미학을 재확인했습니다. 이는 나중에 파르테논 신전에서 얻을 깨달음의 중요한 예행연습이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이미지 출처 : 나무 위키),

블루 모스크라고 불리며, 1616년에 완공되었다. 메흐메트 아아가 설계하였고, 오스만 제국 고전 건축의 정점. 6개의 미나렛과 웅장한 주 돔이 특징적이다. 당시의 꼬르뷔제인 잔느레에게는 유럽의 비합리적인 건축 경향에 대한 완벽한 해독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이 모스크에서 다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첫 번째로는 순수한 기하학적 볼륨의 힘이다. 모스크는 복잡한 장식보다는 돔(구), 반돔, 원통 등 단순하고 명료한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볼륨들은 정교한 비례로 쌓아 올려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압도적인 통일성과 장엄함을 선사하고 있다. 이에 잔느레는 불필요한 장식 없이 오직 순수한 형태와 빛의 작용만으로 최고의 미적 숭고함을 달성할 수 있음을 확인했으며, 이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얻을 깨달음과 연결되는 중요한 미학적 기초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시스템적 합리성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돔을 네 개의 튼튼한 기둥(코끼리 발)이 지탱하고, 주변의 반돔들이 주 돔의 하중을 단계적으로 분산시키는 명료한 구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에, '기능(하중 지지)'이 '형태(돔과 기둥)'를 결정하는 합리적인 방식을 보여주며, 이는 그가 베를린에서 배운 산업적 합리성이 웅장한 기념비 건축에서도 구현될 수 있음을 증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건축적 형태의 순수성과 구조적 대담성에 깊은 감명을 받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은 그의 건축 사상에 공간 구성의 힘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서기 537년 (비잔틴 제국)에 완공되었으며 건축가 안테미오스(Anthemius of Tralles)와 이시도로스(Isidore of Miletus)가 설계하였다. 본래 동방 정교회 성당으로 건설되었으나, 오스만 정복 이후 모스크로, 현대에는 박물관을 거쳐 다시 모스크로 사용되며 시대를 초월한 상징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당시의 잔느레는 단순한 형태를 대담하게 결합하여 숭고한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을 배웠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구조적 대담성과 돔의 미학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모스크 내부로 들어서면 느껴지는 거대한 공간감과 그 공간을 덮고 있는 압도적인 돔이 가장 큰 인상을 주기 때문에 돔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빛의 연출과 구조적 명료성은 그에게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한다.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최고의 사례의 중요한 건축물로, 복잡한 장식 없이도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돔)'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압도하는 보편적인 건축 미학을 달성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그의 순수주의 미학이 단순한 기능주의를 넘어 숭고함을 지향해야 함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한, 중앙의 주 돔과 그 하중을 분산시키는 '반돔(Semi-Domes)'들이 단계적으로 연결되어, 명확한 기하학적 시스템을 통해 거대한 내부 공간을 조직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므로 건축의 힘이 벽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볼륨을 정확하게 조합하여 공간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에 있음을 깨달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순수주의 건축의 형태 결정 원리에 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계적인 시대'의 기술력을 통해 '영원한 고전의 질서'를 재창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관찰, 인간적인 도시 조직 (주거)

모스크의 웅장함과 대조적으로, 구시가지의 '오 달러(Odalar, 전통 주택)'들은 불규칙하면서도 유기적으로 밀집되어 인간적인 척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주택들은 개별적으로는 소박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햇빛과 전망을 서로 침해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배치된 지혜로운 시스템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엄격한 격자(Grid)'만이 유일한 도시 계획의 답이 아닐 수 있다는 대안적인 유기적 도시 질서에 대한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르사, 토착건축을 통한 배움

이스탄불 인근의 부르사에서는 더욱 순수한 아나톨리아의 토착 건축을 관찰했습니다. 이 건축물들은 장식 없이 기능적 필요에 의해서만 형태가 결정되는 정직함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는 빈에서 아돌프 로스에게서 배운 '장식 배제의 윤리'를, 고전 건축이 아닌 토착 건축의 지혜 속에서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여행에서는 건축이 산업적 합리성을 갖추되, 그 형태와 질서는 인간적인 척도와 순수한 기하학적 볼륨에 기반해야 한다는 미학적 방향을 결정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정한 미학은 겉치레나 장식적인 기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형태와 구조의 진실성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보편적 형태의 필요성: 유행에 따라 변하는 지역적 스타일(Style) 대신,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건축 원칙(Forme)'과 규범을 찾아야 한다는 윤리적, 미학적 갈망을 심화시켰다. 이는 곧 아테네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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