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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꼬르뷔제/08-3] 영혼의 순례와 미학적 진리의 발견, 아토스 산과 아테네 (1911년 8월 ~ 10월)

기록하는 건축가 2025. 11. 1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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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과 이스탄불에서 얻은 기술적 지식과 사회적 문제의식을 보편적이고 영원한 미학적 진리로 완성시킨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다. 이후 아테네에서의 깨달음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1911년 8월부터 10월까지 (약 3개월)까지의 기간 동안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아토스 산 (Mount Athos)을 거쳐 아테네 (Athens)를 여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순수한 형태와 비례의 법칙을 발견하고 건축적 윤리를 완성하게 됩니다.

 

#윤리적 절제의 완성, 아토스 산

아토스 산 (왼쪽 : 이미지 출처 : 익스피디아) 시모노 페트라 ( 오른쪽 : 당당뉴스)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반도로, 수많은 정교회 수도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금욕적이고 엄격한 종교적 생활 방식을 고수해 왔다. 수도원 공동체는 외부 세계의 유행과 물질주의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으며, 삶의 모든 방식과 건축은 오직 종교적 규율과 기능적 필요성에 의해서만 결정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제

방문 당시 그가 건축가로서 인식한 '문제'는 현대적인 의미의 사회적 이슈라기보다는, 건축의 본질, 순수성, 그리고 인간의 영적 삶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적 문제 제기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기록과 사상에 비추어 볼 때, 수도원 건축물에서 그가 경험하고 해석한 주요한 '문제'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탄불, 아토스 산, 아테네를 거치는 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건축관을 확립했는데, 특히 아토스 산의 수도원 공동체에서 '영혼을 위한 건축'에 대한 강렬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 건축의 순수성과 무질서의 문제

아토스 산 수도원들의 무질서하고 유기적인 배치와 기하학적 질서 사이의 긴장감을 포착했다. 수도원들은 절벽이나 해안의 험준한 지형에 오랜 세월 동안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며 자리 잡았다. 이는 그가 추구했던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현대 도시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는 이 무질서 속에서도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와 강렬한 덩어리감을 발견했다.

 

특히, *시모노페트라(Simonopetra) 수도원처럼 절벽에 매달린 듯한 건축물에서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힘이 조화된 장엄함을 느꼈다. 그는 이곳에서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삶을 위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다졌다.

 

*시모노페트라 (Simonopetra)

그리스 아토스 산에 위치한 동방 정교회의 가장 인상적이고 유명한 수도원 중 하나다. 그리스어로 "시몬의 바위(Simon's Rock)"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토스 산 반도의 남부 해안, 해발 약 33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거대한 바위 위에 마치 매달려 있는 것처럼 건축된 모습은 보는 이에게 압도적인 인상을 줍니다.

그의 동방 여행에서 큰 영감을 받은 건축물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반도에서 가장 대담한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3세기에 *성 시몬(Saint Simon)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성 시몬은 동굴에서 명상하던 중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받고 이 바위 위에 수도원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2.  고립된 공동체와 자급자족의 문제

수도사들의 노동과 공동체 생활을 직접 경험하면서, 건축이 개인의 영적 수양과 집단생활을 어떻게 지탱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고찰했다. 수도사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자급자족하며 검소한 생활을 한다. 그는 이러한 수도원 공간을 '미래의 집합 주거 모델(*유니테 다비타시옹, Unité d'habitation)'을 구상하는 데 있어 하나의 선례로 참고하게 된다. 건축은 어떻게 물질적인 필요를 최소화하면서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까? 그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자신의 건축 철학에 영적인 차원을 부여했다.

 

*유니떼 다비타시옹
(Unité d'habitation)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한 혁신적인 대규모 공동 주택 건물입니다.

이는 '현대식 아파트의 원형'이자 건축 철학이 집대성된 상징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1952년 준공되었으며,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습니다. 201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되었습니다.

단순히 주거 공간을 넘어, 주민들이 건물 내에서 생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작은 도시를 지향했다. 건물 중간층(보통 7, 8층)에는 상가, 우체국, 레스토랑 등의 편의 시설이 있는 "내부 거리(Rue intérieure)"가 있으며, 옥상에는 유치원, 체육관, 수영장, 산책로 등의 공동 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새로운 건축의 5가지 원칙' 중 하나인 필로티(기둥)를 사용하여 건물을 지면에서 띄웠습니다. 이로써 1층을 개방하고 건물 아래를 통행이나 녹지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인체 비례를 기준으로 개발한 황금비율 시스템인 모듈러를 적용하여 모든 공간과 요소의 치수를 결정했습니다. 이는 인간적인 척도에 맞는 주거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외벽은 콘크리트 마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베통 브뤼(Béton Brut)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거친 질감의 콘크리트 사용은 이후 '브루탈리즘(Brutalism)'이라는 건축 사조의 출발점이 되었다. 대부분의 주거 공간이 2개 층을 연결하는 복층 구조로 설계되어, 단조로운 대규모 아파트에 개방감과 다양한 공간 구성을 부여했습니다.

 

3. 기술과 전통 건축의 대립 (미래 건축의 방향성)

해당 지역의 전통적인 석조 및 목조 건축물은 당시 꿈꾸던 철근 콘크리트 건축과 대립되는 지점에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철근과 콘크리트를 강렬한 카덴차로 혼합하기를 꿈꾸며 이곳까지 밀려왔다"라고 기록했다. 즉, 고전적인 건축 전통을 보면서도, 동시에 현대 재료인 철근 콘크리트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한 도전을 받았다.

 

이후 그가 설계한 '*라 투레트 수도원(La Tourette)' 아토스 산에서 받은 영감과 근대 건축의 원칙을 결합하여, 수도사 생활에 적합한 검박하면서도 혁신적인 콘크리트 구조를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라 투레트 수도원(La Tourette)
후기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힙니다. 시토회의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그의 건축 철학과 종교 건축에 대한 해석이 집약된 장소입니다. 1960년 준공되었으며, 프랑스 리옹 근처, 에브(Éveux) 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재도 도미니크회 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브루탈리즘(Brutalism) 양식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필로티를 이용한 경사 지형 활용한 것이 주요 특징이며, 201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되었습니다. 수도원은 전통적인 사합원(안뜰과 회랑)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기 위해 건물을 필로티(기둥) 위에 띄워 지면을 해방시켰다. 가장 큰 특징은 '노출 콘크리트(베통 브뤼)'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사용하여 수도사들의 금욕적인 생활과 건축의 진실성을 표현한 것이다. 내부는 복층형 주거 공간과 공용 시설로 구성되어 자급자족 공동체의 기능을 수행하며, 창문 배열과 빛의 통제를 통해 예배 공간에 극적인 명암을 부여하며 영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시모노페트라 수도원에서 받은 고립된 공동체에 대한 영감을 기능주의와 결합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20세기 종교 건축의 혁신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결론적으로, 아토스 산은 단지 건축적 영감을 주는 장소가 아니라, 현대 건축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와 목표를 설정하게 해 준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었다.

 

#아토스 산에서의 교훈, 건축적 윤리의 최종 확립

 

당시의 경험은 아돌프 로스에게서 배운 '장식 배제' 철학을 개인의 신념에서 보편적인 윤리적 원칙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최소한의 형태와 최소한의 재료로 이루어진 건축이야말로 가장 정직하고 윤리적이며, 따라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건축의 형태는 정신적,기능적 필요성에서만 도출되어야 하며, 허영심이나 유행은 건축을 오염시키는 요소임을 최종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곧 아테네에서 발견할 '미학적 진리(비례)'에 도덕적이고 절제된 태도를 결합하는 윤리적 필터 역할을 했다.


#아테네, 비례의 절대성 발견

1911년 9월부터 10월까지 머물렀던 아테네는 그의 건축 철학에 미학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완성시킨 여행의 정점이었다. 이곳에서의 깨달음은 '순수주의(Purism)'의 가장 강력한 기반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이자 서구 문명의 근원지로서, 그 중심에는 *아크로폴리스*파르테논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19세기말 독립 후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당신의 관심은 고대의 유적, 특히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고전 건축의 완벽한 유산에 집중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파르테논 신전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스케치하며, 건축물의 비례를 측정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그리스 아테네의 중심부에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 언덕이자, 고대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핵심 유적지입니다.'그리스어로'높은 도시'를 뜻하며, 방어를 위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운 성채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지칭한다.
왼쪽 : 아크로 폴리스 전경 (이미지 출처 : klook), 오른쪽 파르테논 신선 (이미지 출처 : 나무 위키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Parthenon)'은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 건축의 정점입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 승리 후,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의 주도로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가 설계하고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감독하여 지어졌습니다.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 여신이자 지혜와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 파르테노스(처녀 아테나)'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건축 양식은 웅장하고 남성적인 느낌의 도리스식을 기본으로 합니다. 파르테논은 완벽한 비례미를 위해 엔타시스(Entasis) 기법 등 정교한 착시 보정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모든 기둥은 미세하게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바닥(스타일로베이트)은 중앙이 살짝 솟아 있어, 직선의 완벽한 착시를 만들어냅니다. 신전 내부에는 한때 페이디아스가 만든 거대한 금과 상아로 된 아테나 여신상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외벽에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전투와 범아테나이아 축제를 묘사한 조각(메토프와 프리즈)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와 문명의 황금기를 상징하며, 오늘날까지 서양 건축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시대적 미학의 부재

아테네의 현대 도시 모습에서 큰 문제를 찾기보다는, 파르테논 신전의 완벽함을 통해 당대 건축의 미학적 문제점을 역설적으로 발견했다. 파르테논이 보여주는 영원한 비례와 질서 앞에서, 당시 유럽 건축이 겪고 있던 스타일의 혼란, 장식의 과잉, 비합리적인 형태 등이 얼마나 일시적인 실수인지를 깨달았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건축가들이 지역적이거나 시대적인 유행(예: 아르누보, 역사주의)에 갇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원칙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교훈_순수주의의 완성

파르테논 신전에서의 경험은 그의 건축 사상에 가장 중요한 미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직육면체)'와 완벽한 수학적 비례를 통해 시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깨달았다. 형태의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감상이 아닌, 이성에 기반한 수학적 질서에서 비롯된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신전이 보여주는 장식 없는 '순수한 볼륨(Volume)'이 햇빛 아래서 만들어내는 명확한 명암의 유희에 깊이 감명받았습니다. 이 깨달음은 당신의 건축 철학을 집약한 유명한 명언으로 탄생했습니다. "건축은 빛 아래서 당당하고 정확하게 조합된 볼륨의 유희이다." 아테네는 당신에게 '기술(페레)'*과 '윤리(로스)'를 최종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할 영원한 미학적 법칙을 제공함으로써, 그의 근대 건축 철학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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